프로그램 글
현대인 K씨의 일일
오늘도 어김없이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알고리즘은 휴일을 가리지 않는다. 습관처럼 SNS를 열자 어젯밤 홈쇼핑에서 흘깃 본 냄비 세트가 마치 운명처럼 화면 곳곳에서 나를 유혹한다. 머리보다 빠르게, 손가락이 홀린 듯이 결제 버튼을 터치한다. 미리 짜놓은 각본처럼, 때마침 배달앱이 아침 메뉴를 추천하고 단골 패스트푸드점의 할인 쿠폰이 뜬다. 이 완벽한 타이밍에 저항하는 건 불가능하다. 오늘 아침은 데리버거다.
느지막이 일어나 마트에 간다. 형광등 아래 반짝이는 상품들을 둘러보는 일은 항상 짜릿하다. 필요와 욕망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이곳에서, 나는 언제나 욕망에 굴복한다. 카트를 끌고 매대 사이를 돌아다니며 스스로를 속인다. 나중에 쓸 일 있겠지, 이 정도 할인이면 사두는 게 이득이야. 포장을 뜯지도 않고 집에 쌓아둔 것들을 또 담으면서도, 묘한 승리감에 취한다. 카트는 점점 무거워지고, 죄책감과 쾌락이 뒤섞인 묘한 아드레날린이 온몸을 내달린다.
오후, 야구장 그라운드를 둘러싼 전광판들이 끊임없이 반짝이며 시선을 빼앗는다. 빨간 유니폼을 입은 관중들 사이에서 마트에서 산 ABC 초콜릿을 먹는다. 7회 말, 패배가 짙어진 상황에서도 관중들의 열광적인 응원은 계속된다. 함성 속에 섞여 나도 어느새 충성을 외친다. “자이언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창밖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초고층 아파트를 올려다본다. 123층. 숫자만큼이나 아득한 그곳에는 내가 ‘가질 수 없는’ 삶이 있다. 영화 〈기생충〉의 말미에서, 아버지에게 보내는 기우의 답장에는 일단 돈부터 벌어 당신이 숨어있는 그 호화 주택을 사겠노라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월급을 사용하지 않고 꼬박 모아도 기우가 그 집을 사려면 547년이 걸린다고 했다.
집에 도착하니 때마침 문자 알람이 울린다. “신용 대출이 필요하신가요? 직장인이라면 최대 1억 5천, 주부 또는 무직이어도 최대 6천!” 달콤한 유혹에 이끌려 나의 547년을 계산해 본다. 그리고 금세 이번 달 카드값을 떠올리고는 멈칫한다. 대출을 대출로 갚는다. 나는 이 순환 고리 속에서 헤엄치는 법을 배웠다.
알람에서 시작해 알람으로 끝나는 하루. 내일도 같은 시간에 같은 소리로 눈을 뜰 것이다. 이 끝없는 사이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가다가도, 곧이어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알람에 다시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내 몸은 여기 있지만, 내 의지는 이미 오래전에 이 거대한 시스템에 접속된 채로 로그아웃을 잊어버렸다.